요즘 머리를 여러가지로 굴리면서 제 뇌 용량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두통이 심해지고, 뇌가 받는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알게되면서,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줄이고, 뇌의 용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지식관리라는 측면에서 컴퓨터는 뇌의 용량을 확대해줄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일정관리에서는 많이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전 전혀 활용하고 있지 못합니다.)
통신 기능으로서 사용하는 것도 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잘못 활용하고 있지만요.)

그래서 이러한 기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게 현재 목표입니다.

지식관리, 일정관리, 통신기능(지식의 소통)... 자산관리도 있군요.
회원관리, 회계관리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컴퓨터가 국내에 보급된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컴퓨터 덕분에 산업이 발전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은 컴퓨터의 사용을 어려워하며,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곳도 적습니다.
회계를 하려면 엑셀을 배워야 한다고 하고,
엑셀로 열심히 회계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국내에 여러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재생산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소스코드가 공개되지 않아서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갖추어 쓸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소프트웨어를 공부하고, 개발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다 찾지 못할 정도로 많아도,
컴퓨터를 사용하는데에 적당한 소프트웨어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이상한 현상입니다.
그놈의 '돈'이 문제겠지요?

자신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 아니면 개발하지 않을 것이고,
개발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생각은 없을 것입니다.
다른사람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면 돈을 받기 전까진 만들지 않을 것이고,
만든 다음에도 공개하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암울합니다.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연합회에서 해야 할 일이 사람들에게 비난받거나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생각도 여러차례 했습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를 공개하여도,
노력하지 않는 이상, 그 소프트웨어가 쉽게 전파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까지 모두 갖추기 전까진
소프트웨어를 쉽게 사용하거나 개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에서도 자유소프트웨어를 분석하고 사용할 줄 모른다면, 쓸 수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분석하는 노력도 '기업'단위의 이익이 없다면 안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연합회의 활동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에 좋은 품질의 소프트웨어를 쉽게 공급할 수 있고,
기업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으며,
개인들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창구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위상과 노력에 대한 댓가를 높게 평가받길 바랍니다.
국내에서는 품질 좋은 소프트웨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수요에 맞춰 좋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노력을 아끼지 않기를 바랍니다.

회의나 모임에 가면 '돈이 되는 생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잘 생각하다 보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있긴 있나보다.

물론 경영이나 아이디어로 경비를 줄이거나, 불필요한 일을 줄이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나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생각만 한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거기에 수반하는 행동과 노력도 동시에 필요한 법이라 생각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떼돈을 번다는 얘기를 볼 때 마다, 사람들은 단편적인 생각만으로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이 따를 것이라 착각한다. 진정한 아이디어는 오랫동안 종합적인 지식, 즉 경험이나, 간접체험이나 책이나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지식이 모두 융합해야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런 아이디어는 소프트웨어의 한 요소일 뿐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 하드웨어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작고 간단한 일을 할 때, 소프트웨어 요소없이 하드웨어 요소만을 투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할 때가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작은 일, 간단한 일 하나에서부터 시작한다. 주변의 작고 간단한 일부터 소프트웨어를 도입하고, 그에 따른 모델과 철학적 사고를 하는 것에서부터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더. 관찰하는 대상에 대한 순수한 접근과 편견없는 관심이 올바른 지식을 얻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밑의 글은 감정 상해서 썼던 글이다... 사업취지서... 오랫만에 들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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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립 취 지 서

국내에서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확산되고, 많은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지지자들과 사용자, 개발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은 자유의지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자유소프트웨어를 알리고 배포하는데 중점을 두어왔다. 하지만, 여러 가지 법적 제한으로 인해 행사의 개최나 기업으로부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국내에서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관련하여 지원과 행정적 도움을 주는 곳으로 한국소프트웨어 진흥원이 있었으나, 2007년 초부터 일반인들로 구성된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단체의 지원은 가시적인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따라서 국내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단체들이 법적보호와 지원을 받기 위해, 비영리 사단법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단체와 개인은 자신들의 사비로 단체의 운영과 행사의 진행을 해오거나, 개인적인 친분으로 주변 기업으로부터의 지원을 받아왔으나, 영구적이지 못하고, 일시적인 데다가, 기업에서 이 비용을 세금처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크지 않은 범위 내에서만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한 때문에 국내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은 힘을 얻기가 힘들었으며, 대단위의 행사나 기획을 할 수 없었던 점이 사실이다. 운영자와 참여자들의 노력도 생계유지와 경제적 제한 때문에 영구적일 수 없었으며,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생산, 유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활동은 외국에 비해 무척 빈약하고, 무책임한 활동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이러한 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몇몇 비영리 및 영리 법인들이 등장하였지만, 이들 법인체들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특정 계층(기업, 학생, 교수)의 인사에게만 지원이 될 뿐, 자격을 얻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형태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 이미 많은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고 있으며, 지원에 조건을 두어 그들의 개발 권한과 생산된 산물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이에 국내의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단체가 자유로운 소프트웨어 개발과 그에 따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비영리 사단법인을 결성하고, 실질적이고 형평성 있는 운영을 통해 많은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사용자와 개발자들을 지원하고자 한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유 소프트웨어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자기 자신의 노력만 가미한다면, 누구에게나 쉽고 즐겁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다.

자유소프트웨어는 그 자체로 돈을 벌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거기에 더불어 자신의 노력이 가미되어야만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전 글에 대한 지적으로, '오픈소스는 경제적인 수단이 있어야만 한다.'고 답변을 하셨던 Hybrid님의 말씀처럼, 경제적 수입이 없다면 자유소프트웨어 제작자와 지원자들은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러나 자유소프트웨어는 배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직장을 창출해내는 장치이다. 그러므로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또 다른 자유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개선해나가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사상과 정신을 이해시키려 한다.

자유소프트웨어는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원해서 만들고, 원하면 개선한다. 자신이 만들 힘이 없으면 그것을 개선할 사람을 고용해서 개선하도록 한다. 개발한 사람의 의지와 사용자의 편의가 맞아떨어진다면,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선을 일부러 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가져다 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자유소프트웨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배포본 개발 업체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쓰기 쉽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노력없이 쓸 수 있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천가지 소스 패키지들을 하나로 취합해 원하는 목적에 쓸 수 있도록 만드려면 천가지 소스 패키지들을 일일이 다 확인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업체가 전 세계에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로 어려운 일임엔 틀림없다. (만약 쉽다면 컴퓨터 가게만큼 많아야 정상이지 않을까?)

국내 리눅스 업체들이 망한 이유는 '팔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한 때의 노력으로 편리하게 만들면, 앞으로 손보지 않고도 계속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팔 필요가 없다. 자유소프트웨어는 정말로 팔 수 없는 소프트웨어이다. 팔아서 이윤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많은 노력을 담은 제품이라는 뜻이다. 그 노력이 매일 이른 새벽,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줍는 환경 미화원의 노력만큼 고되고, 힘들었다면,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편리하고 쾌적하게 느낄 것이다. 자유 소프트웨어는 정말로 '육체노동'과 맞먹는 고통의 '지식 노동'을 요구한다.

그러한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이 글을 읽으면서 긍정하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유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당신들 뿐이다.

그러나 자유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배포하는 과정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유소프트웨어는 '협업'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이다. 많은 개발자들이 프로그램의 버그를 전달하고, 개선하고, 재배포 하는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그 기반에 네트워크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노력을 비동기적으로 아무 때에나 한 곳에 모으기 쉽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이미 개발된 많은 소스들을 네트워크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많은 개발자들이 개발하기 원하는 기능을 새로운 정신적 고통을 치르지 않고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프로젝트를 포크하여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변모시킬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의 재배포에 대한 라이센스를 준수하기만 한다면, 자신만의 버전을 배포할 수도 있다. 기존의 자유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들은 버전 관리를 통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포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소프트웨어 공학에 적합한 형태로 개발되고 발전되어 온 자유소프트웨어의 힘이다. 전자 네트워크를 통한 자유소프트웨어의 배포는 무척이나 용이해졌지만, 이것은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개발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여러분의 주의를 둘러보라. 누구 하나 리눅스를 쓰는 사람이 없다면, 당신은 배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원할 때 쓸 수 없다. 이 전제가 모든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일자리를 주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주변에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간단하게는 자신의 중요한 원고를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남기길 원하는 소설가에서부터, 대형 유통회사에 대항해 조합을 형성하여 간신히 영업을 하고 있는 서점, 슈퍼마켓, 외식업체 사장님들, 동네에 철물점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열심히 검색엔진을 통해 검색하는 사람들, 아이들이 공부 외에 다른 용도로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어하는 부모님들 등등... 이 사람들은 정보를 갈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이러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며, 여러분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소프트웨어를 그들이 원하는 형태로 바꿔주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일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업체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네이버, 다음, 구글, 야후... 그들이 모든 정보를 돈을 주고 구입하여 사람들에게 아주 싼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못하는 것은 너무 많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접객할 수 없으며,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원하는 수요를 충족하고 있지 못하다. 난 이러한 일을 하는데 지역 개발자 단체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같이 직접 호흡하면서 사람들이 직접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배포하는 개발자. 내가 꿈꾸는 최상의 모델이며,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다.

현재의 자유소프트웨어는 어느 정도 성숙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두명씩 개발자가 자라나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자유소프트웨어를 제작하고, 아무런 댓가없이 배포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도움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제공할 수 있는 댓가만큼을 지불하도록 종용하라. 세상에 공짜는 없지 않은가? 일단 그렇게 만든 것을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라. 누군가 그 소스를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젠가 또 다른 개발자가 그 소스를 이용해서 별다른 노력없이 금방 소프트웨어를 제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 개발자를 먹여살린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느라 고생하고 있을 많은 개발자들을 먹여 살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댓가만으로 제작된 듯 한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댓가 총합과 같다. 그럼 만든 사람만 고생이지 않았겠는가? 괜찮다. 그 사람들도 자신들의 소스 외의 다른 부분을 쉽게 얻어서 쓰지 않았는가. 그 정도의 노력이야 기존 개발한 사람들의 노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개발자들의 문제는 자신이 만든 소스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필요로 의해 만들었고, 그 필요가 다른 회사에도 있을 터이니, 나중에 그 노력을 돈으로 치환받기 위해서라도 공개되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개하지 않아야 다른 개발자가 그것을 만들어주기 위해 돈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악의적인 생각으로 그러한다면 자기 자신만이 그것을 만들 수 있고, 자신만이 그것을 위해 일 해야만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의식이 남아있는 것이 우리나라 개발자 풍토이다. 그래서 더욱 더 이 사회에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필요하다.

소프트웨어는 정신적 작용을 통해 이뤄내는 산물이다.

글, 음악, 회화작품처럼 컴퓨터 프로그램(Program)도 소프트웨어이다. 정신적 작용을 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누군가 썼던 표현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고, 음악을 잘 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들었던 음악을 표현할 수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렸던 그림을 다시 그릴 수도 있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남의 글이라고, 내가 읽고 다시 쓸 수 없고, 남의 노래라고 내가 흥얼거릴 수 없고, 남의 그림이라고 내가 따라 그릴 수 없다면... 그것으로 인해 나의 정신적 작용을 통해 표현하는 자유를 억압받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특허를 냈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는 소스를 쓸 수 없다면, 특허에 없는 소스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체계적이고, 성능에 적절한 구조를 따라 작성되기 때문에, 특정 기능에 대해 누군가 먼저 생각해내고, 고안해 내었다면, 후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같은 구조의 소스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이 만들 수 있고, 자신의 능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어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음원의 복제가 크나큰 문제가 되었다. 본래 노래를 불렀던 사람의 음성, 소리를 그대로 재현해내면서, 처음 한 번 노래를 부르면, 그 이후로는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자기 노래의 희소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수는 세상에서 제일 궁핍한 사람이 된 듯 하다. 그들 중, 궁핍한 사람이 많다 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모두 궁핍하지는 않다. 왜 그럴까?

컴퓨터 프로그램의 불법복제가 심하다고 한다. 정말로 국내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국내에서 열심히 소프트웨어를 제작해도 망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가 없을까? 아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판매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앞의 두 예는 국내에 "저작권 보호법"의 확대 시행이 이뤄지면서 보호받게 된 사례이다. 컴퓨터는 정품을 쓰도록 제한하고, 음반은 아무데서나 틀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래서 이젠 돈벌이가 아주 잘 되었는가? 아니다. 오히려 더 고단하다. 대규모로 투자받고, 대규모로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 그들은 법의 보호를 받아서 살아남은게 아니다. 그들의 존재를 스스로 알려서 살아남았을 뿐이다.

음악의 질은 세계최고 수준이 아니다. 그래도 국내에선 세계의 명반보단 많이 팔린다. 프로그램의 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다. 그래도 국내에선 세계 최고의 프로그램보단 많이 팔린다. 이유는 하나. 지역적,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친밀함이다.

누구나 다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할 수 있고, 그들이 모두다 명곡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명곡을 흉내내고, 명곡의 기교를 배워 스스로의 음악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을 모두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평생 그들을 위해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듣는 사람들은 음악의 풍요속에 살 것이다.

누구나 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제작 할 수 있고, 그들이 모두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프로그램을 흉내내고, 최고의 응용프로그램들의 알고리즘과 기술들을 배워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의 프로그램을 모두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그들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평생 그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프로그램의 풍요 속에서 살 것이다.

난 이러한 풍요를 위해서 사회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왔다. 그것은 바로 '노동의 가치'이다. 일의 책임에 따라, 경중에 따라, 위험도에 따라, 희소성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것이 노동의 댓가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상대적 잣대를 재어 모든 사람들의 노동 가치를 평가하면, 불합리한 것들이 많아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쓰레기 줍기'를 아무나 할 수 있다고 해서 청소부의 노동가치를 싸게 정한다면, 이 세상은 쓰레기로 덮힐지도 모른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그들의 노동을 '필수적인 활동'으로 인식하여 그 가치를 판단한다. 또한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적용되므로, 노동 가치의 단위화가 가능하다.

고도화, 정보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컴퓨터의 사용은 필수적이고, 컴퓨터 프로그램의 수요는 항상 있다. 또한 지역적 특성외에는 거의 모든 곳이 비슷한 형태의 사회 구조를 갖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약간의 특수성을 띄면서도 거의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다. 프로그램을 특허내어 한 사람 혹은 기업의 힘으로 모든 지역,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란 어렵다. 국내의 음반이 지역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국내에서 더 잘 팔리는 것처럼, 프로그래머가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주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끼린 경쟁보단 협업과 기술 공유로 서로의 기술을 발전하고, 더 나은 생산력을 얻는 것이 어떠할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 서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보다는 보편적 성향에 기대면서, 그러한 보편적 성향이 특정인의 주장과 생각으로 형성되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안타깝다. 서로의 의사를 교환하는 방법이나 횟수도 무척 적다. 사회적 공감대란 누구 하나의 의견도 빼놓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협상하며 결정되어야 이뤄질 수 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한 목소리를 지녀야 비로소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진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이 운동이야말로 '사회적 공감대'가 없으면 결코 이뤄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1월 18일 Richard Matthew Stallman 의 강연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유소프트웨어'인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가를 두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Stallman 씨는 오로지 '자유소프트웨어'만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정의 안에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또 다른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는 소프트웨어와 다름 없다고 여겨진다.

그의 사고는 철두철미하며, 철저히 합리적인 사고로 이뤄져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열려있는 사고는 아니었던듯 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삶에 대한 걱정'을 물어보려 했지만, 그는 '삶의 주체자'에게 그 책임이 있지, 자신에게나 자유소프트웨어 재단에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소프트웨어'가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님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유소프트웨어를 주장하기 보다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주장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자유 소프트웨어가 구분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자유소프트웨어의 개념적 차이는 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픈소스가 공익적인 목적외에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허용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도록 권고한다. 자유소프트웨어에서는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소프트웨어를 널리 사용해주길 원하며, 그들의 소프트웨어를 수정하여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만들기를 권한다.

나는 자유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떨어질 수 없는 형태의 개념이라 생각한다.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것에는 분명 노력이 드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 노력을 보상받을 수 없다면 그 누구도 노력을 하지 않을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명망이든, 경제적 지원이든, 그들에겐 노력에 대해 보상받을 이유가 있다.

RMS는 분명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신의 의지로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강연을 통해 "자유소프트웨어의 의지"를 표출하며 도움을 원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너희도 자유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지원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도 그의 삶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정말 사회에 대한 걱정을 한다. 그가 공생해나갈 사회가 무너지고, 암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나눠주면서 그가 그런 것처럼 우리가 자유소프트웨어를 가르쳐주고, 널리 나눠주길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사회를 구성하고, 서로 공생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이 그가 바라는 하나의 댓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