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에 해당되는 글 87건

  1. 2006/04/06 바부... 탈무드의 이야기를 생각해내다. (4)
  2. 2006/04/04 바부... 이제는 정신없이 지내기...
  3. 2006/03/12 바부... 나의 가치는 어디까지일까...?
  4. 2006/03/09 바부... 위험한 생각의 반전 #1 (미성년자관람불가) (2)
  5. 2006/03/03 바부... 스스로 위기에 처하는 남자 (2)
  6. 2006/03/01 바부... 처음으로 블로그를 열어봅니다. (6)
  7. 2006/03/01 바부... 즐거운 일은 자주 잊혀지기에...
탈무드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나라에 부유하게 사는 부자가 있었다. 그는 총명한 종에게 '맛있는 별미'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종은 시장에 나가 '우설(소의 혀)'를 사왔다. 주인은 우설을 먹고는 만족했다. 다음날이 되어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총명한 종에게 평소에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랬더니 그 종은 다시 '우설'을 사온 것이 아니겠는가? 의아한 주인이 '너는 별미로 우설을 가져왔었는데, 왜 오늘은 평범한 음식으로 가져왔느냐?' 라고 물었다. 총명한 주인은 '혀는 쓰기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변합니다. 하여 혀요리를 사온 것입니다.' 이에 주인은 납득했다 한다.

헌데, 정말 위의 얘기가 맞을까? 난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무시하고 싶진 않다. 분명 혀는 쓰는 목적에 따라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자연스럽고 진부하지 않은 교훈을 전달하도록 고쳐보면 어떨까? 난 이렇게 고쳐 쓰겠다.

한 나라의 국왕이 있었다. 국왕은 총명한 신하에게 '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진미를 가져다 주시오.' 라며 지시를 하였다. 신하는 '우설'을 진상하였다. 아무런 음식이나 먹을 수 없었던 국왕은 소의 특정 부위를 맛보며 특별한 맛을 느꼈다. 그는 다시 신하에게 '일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맛있는 것을 가져다 주시오.' 라고 지시했다. 신하는 다시 '우설'을 진상했다. 의아하게 여긴 왕은 신하에게 '분명 내게 진미를 가져다 준다며 우설을 주었는데, 일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것을 진미라 가져다 주었단 말이오?' 그러자 신하는 대답한다. '맛이란 상대적인 것이며,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옵니다. 이미 산해진미에 맛이 길들여진 전하께서는 먹어보지 못한 일반 백성의 맛난 음식이 진미와 다름 없사옵니다. 만약 백성들이 전하의 수라를 보면 천하진미라 여길 것이옵니다.' 이에 왕은 느낀바가 있어 나라를 다스릴 때 한가지 기준에 얽매여 우매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한가지 사고만을 가지지 않고 다른 사고를 인정해주는 것도 충분히 중요하다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6/04/06 10:02 2006/04/06 10:02
TAG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4개가 달렸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snwslug.fossa.kr/~jachin/rss/response/21

댓글+트랙백 ATOM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response/21

맘의 정리가 안되는 요즘, 자꾸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맘에 결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는다더니, 확실히 '여자친구' 문제로 한동안 시름시름 앓았던 것이 낫지 않았나 봅니다. 한동안 맘고생하면서 지내겠다는 생각에 '일'에 몰두하면서 잊어보려 합니다.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 그런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한가지 일이라도 더 하려고 합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꼼꼼히 집중하며 맘을 추스리고 나면 괜찮아지겠지요. 자꾸 생각날 때마다 울컥거리는 맘을 다독이며, '앞으론 이런 실수는 하고 싶지 않다'고 되뇌입니다. 속이 찌릿한 이 느낌은 느낄 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숨이 가빠집니다. 가끔 헛웃음이 나올때도 있고요...

이젠 이 글로 그런 생각과 기억을 다 지우려합니다. 다시 생각해도 무감각해질만큼 노력할겁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6/04/04 04:03 2006/04/04 04:03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snwslug.fossa.kr/~jachin/rss/response/20

댓글+트랙백 ATOM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response/20

난 나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스스로를 각인시킨다.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준다. 난 세상에서 바라보는 상대적 기준의 평가를 무시한다. 물론, 그것을 내 절대적 평가에 가중치로 두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난 남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바라본다. 또한 앞으로의 가능성도 같이. 하지만 정작 내 자신은 평가해보지 않았다. 아니, 맘 속으론 평가해 보면서도 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스스로 나를 평가한다면 난 게으르고, 계획한대로 행동하지도 않고,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계획력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계획이 나중에 차질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대비책을 생각해두는 것이 전부랄까?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보지도 않은 적이 많다. 문제 있는 성격이다. 유우부단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로 바꾸지 않는 것이 내 철칙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 그러한 면도 수그러들긴 했지만...

나에 대한 평가를 그만 두고, 맘에 걸리는 생각을 먼저 정리해볼까 한다.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는 철칙에 금이 간 이유이다. 그건 '인간관계'다. 제일 큰 문제는 확실히 '여자친구' 문제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자신의 여성관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난 대학교 입학까지 직접 나서서 여자친구를 사귀려고 했던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표현방법'을 몰랐다. 행동으로는 잘 대해주고, 맘으로는 맘에 들어하면서도 생각에는 '교제'나 '연애'라는 표현을 몰랐던 것이다. 그것도 나중에야 친구들의 권유로 '사귄다는 경험'을 시도하긴 했지만, 실패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차였다. -_-;;; 이후로 난 '여성으로부터 판단된 나의 가치'가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론 실망의 연속이었다. 실망하고, 실망하고, 또 실망하고... 내가 생각해왔던 가치와는 다르다. 아니 몇몇 사람들은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 평가에 눌려 우선순위가 높은 상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난 남성들만 드글대는 사회에서는 우대받는 편이었어도, 여성이 있는 사회에서는 하대받는 편인지도 모르겠다. 난 '여성으로부터 평가받는 내 자신'을 알아보기 위해 최대한 많은 방법으로 '여성사회'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내가 평가하는 기준은 기혼자 여성들이나 공감할 만한 기준이었다. 나의 기준은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 이다.

나의 기준은 정말 이상한 것이다. 문명 사회 안의 정해진 규격 안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면 생존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존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왜일까? 나로서는 그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없어도 자신이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모두가 자신의 가치를 부정해도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까? 난 있다. 여태까지 나의 가치는 부정당해왔고, 많은 사람들이 나의 실제 가치를 이용하려 했었기 때문이다. 난 오랜 고생 끝에 나의 가치를 찾아냈다. 마치 '세상을 왕따'시켜버려도 살아 남을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도와 환경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장점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특별한 지위나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심심치않게 봤다. 그렇다고 내가 불법행위를 일삼아 온 것도 아니다. 그저 제대로 된 주장을 서슴치 않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여성사회에서는 나의 기준같은 건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런것은 치장에 도움이 안되기도 하겠지만, 매번 촌티나고, 입었던 옷 입고, 지저분하게 사는 남자를 좋아할만한 여성은 없으니까. 나는 여성사회에서 거의 거지나 다름없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멋도 없고, 지저분하고, 자기 할 것 맘대로 하는 사람에게 '미래'를 맡길 여성도 없거니와,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내가 더 의심스럽다.

여태까지 난 헛수고 해왔다. 가치있는 사람에게 가치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는데, 난 쓸모없는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평가받으려 했었다. 남은 시간... 이제는 더이상 쓸데없는 가치로 날 판단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6/03/12 12:55 2006/03/12 12:55
TAG ,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snwslug.fossa.kr/~jachin/rss/response/11

댓글+트랙백 ATOM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response/11

요즘 성폭력 관련 기사가 눈에 띄게 많다. 예전엔 지하철 가판 '일요신문'같은데에서나 봤음직한 기사가 인터넷 기사로 올라와 있다. 자극적인 내용임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금기를 뛰어넘어버린 범죄행위에 사람들은 읽으면서 분노를 느낀다. 나 또한 분노를 느낀다. 그 일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당연히 그럴것이다. 하지만 난 눈 앞에 보이는 일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얘기는 잘 안믿는 편이다. 한쪽 말만 듣고 모두 수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그 일에 대한 근거를 찾거나 어떤 계기가 있는지 확인을 하곤 한다. 주변 사람들의 일이라면 그러겠지만, 내가 없는 그곳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범죄행위들을 확인하는 것은 내 할 일도 아니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일련의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난 스스로 나 자신에게 되묻는다. 난 결코 저 사람들의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 난 결코 저들과 다른 인간일까? 나는 내 자신의 성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성폭력의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스스로 물으면서 난 가능한 여러가지 상황을 생각해본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배우자가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따뜻하게 감싸줄 것이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난 순결이라는 말을 달리 해석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생식 능력을 한 사람을 위해서만 쓴다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고 인생을 망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이다. 내 배우자가 그러한 일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러한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고 싶다. 그렇다고 나와 정신적 유대를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의 밀애를 허락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순결, 순수, 순진함 등을 정의할 때 오히려 육체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다. 나의 연인이 나와의 정신적인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나 또한 정신적 순결을 지키고자 한다. 혹자는 나에게 '당신이 성매매나 성행위로 즐거움을 얻는 것을 정신적 순결과 다르다고 하면 당신의 행위만 정당화되지 않겠는가?' 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성매매나 성행위를 육체적 쾌락의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또한 정신적 유대다. 그 중간에 돈이나 약속의 형태를 띄는 매개체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그 유대를 끊고 다시 잇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연인들의 성행위에 대한 매개체는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깨져버린다면 정신적 유대 또한 깨지게 되는 것이다. 난 결코 그러한 정신적 유대를 함부로 깨드리지 않는다. 그로 인해 내 순결함에도 금이 가게 되는 것이니까.

성폭행은 분명 범죄다. 위에서 내가 말한 것처럼, 정신적 유대가 없이 이뤄지는 성행위는 말 그대로 폭력이며, 한 사람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의 육체적 생식 능력또한 저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말그대로 폭행까지 하게 된다면 육체적인 고통까지 안겨주게 된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나 스스로 묻는다. '죄지은 자를 단죄하는 자리에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하겠는가?' 글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난 그 사람의 생식 능력을 근절한다(?)는 생각 보다는 그 사람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에 더 주안점을 두고 싶다. 물론 '생식능력 제거'만큼 그것에 상응하는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 처벌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성폭력을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은 '생식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변태적인 사건들 중에는 통나무나 공사장 철근을 이용하여 (대부분) 여성의 생식능력을 앗아간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기억해내면서도 잔인한 행위에 대해 적나라하게 쓰는 것을 두려워한다. 누군가 이 글의 악한 면을 따라할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사람들을 단죄한단 말인가?

최근 성추행 파문으로 문제가 일어난 국회의원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가 한 행위는 '성추행'. 폭력에는 끼지 않는 모양이다. (난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의 의식 기준을 안다. 분명 정신적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긴 하지만 그것이 순결을 위협하는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 표현할 것이다.) 여기자이기 이전에 '여성'에 대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을 여성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내가 여성으로 태어났어도 용서하기 힘들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에 대한 판결을 내가 내리라고 했다면 그 사람의 행위에 실형을 선고하려 했을까? 아니다. 난 그 사람의 행위가 그 사람의 지위나 행동에 제약을 줄 처벌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사람의 행위에 벌금형이나 상대방을 납득시켜 협의를 보는 행위로 대신하길 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의원직 사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친일파이던, 성도착자이던 그 사람의 의원자격은 내 기준으로 보면 한참 미달이다.) 나의 판결은 나의 기준에 의한 것이다. 감정적인 기준이 아닌 위에서 애기한 나만의 기준이다. 다만 국회의원직 사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국회의원직은 사람들의 '인기'를 통해 뽑는 '연예인'인 이상 (난 국회의원의 선출 방법을 정말 싫어한다. TV 에 나오는 연애인들의 인기 순위보다 더 신빙성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그 사람의 인기는 떨어질 것이다. 다른 국회의원들도 공개적으로 그와 가까이 지내기를 꺼릴 것이다. 다른 의원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만 다음 선거에서도 뽑힐 수 있을테니까. 다만 그를 뽑아준 유권자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난 그 동네 사람들의 도덕적 기준을 의심스럽게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지위는 유지되나 그에게 실질적인 형태의 제재는 가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문제는 '성추행'의 문제였지 '성폭력'이 아니었다. 난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정신적 자유를 뺐고 싶다. 그렇게 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놓고 성폭력자들끼리 그곳에서 살게 하는 것. 그렇게만 해도 그들에게 정신적 자유는 없다. 최소한 성폭력은 계속 할 수 있어도 말이다.(?)

사람이 문명세계를 떠나면 정신적 자유를 누리기는 힘들다. 공부를 한다거나 사교 모임을 갖는다거나, 문화생활을 하는 것, 종교를 갖고 추종하는 것은 정신적 자유 내에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하는 행위이다. 물론 섬에서 고립되어도 그런 행위는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댓가를 지불하면서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로부터의 고립은 가장 유효하면서도 힘든 방법이다. 인간이 모여있다면 그 나름대로의 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내릴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감옥? 감옥에 몇 년 있다가 온다면 사회가 바뀔 뿐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독방 종신형이다.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은 그 방법밖에 없다. 물론 나중에라도 그 사람의 혐의가 없다면 풀어줘야 하겠지만...

꺼내기 어려운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힘들지만, 이 주제를 가지고 남은 내용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 난 여성이 '성'을 미끼로 남성들에게 억압의 굴레를 씌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면 다음과 같이 정의해보자. 위에 언급한 정신적 순결을 개의치 않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여성들은 정신적 순결에 대한 자각이 강하지만, 가끔 소수의 그룹이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남성으로부터 정신적 공격을 받을 이유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마치, 여성이 강제로 남성과 성행위를 하고자 했을 때, 남성이 그 행위를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아무런 자책감이 없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러한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정신적 유대'를 매개로 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매개로 하는 것처럼 성행위를 유도하고는 스스로 '성폭력' 당한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성행위'를 같이 한 남성으로서는 자신의 결백아닌 결백을 증명할 수 조차 없게된다. 이러한 경우 어떤 방법으로 증거를 얻을 수 있느냔 말이다. 결국 '성행위'의 주체인 여성이 '성행위'를 범죄로 몰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에 있는 글들을 유심히 본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고민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남성은 자신과 사랑을 나눈 여성을 보호하길 원하며, 여성은 그러한 남성을 위해 아이를 갖길 원한다. 이점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6/03/09 10:54 2006/03/09 10:54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snwslug.fossa.kr/~jachin/rss/response/10

댓글+트랙백 ATOM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response/10

전 항상 위기의식을 느껴야 무엇이든 최선을 다 했습니다.
시험도 바로 코앞에 2일 정도 와야 공부를 했고,
숙제도 하루 전날 아니면 안할 정도로 뒤로 미루기의 선수입니다.
오픈소스 활동에 있어서도 그날그날 하지 않고 한꺼번에 미뤄서
하루를 투자하거나 반나절을 투자하곤 하죠.
일을 몰아서 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일관성을 지키고 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가끔 자신에게 위기상황을 만들기 위해
엉뚱한 짓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제가 듣고자 하는 수업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
제 스스로 위기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일명 아는척 하기.
미리 아는척 하고, 그것을 해본 것처럼 얘기하는 것.
이런건 기술자들이 하면 안되는 행동이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의 입장이고, 배워야 하는 과목이고,
제 스스로도 그냥 과목을 바꾼다는 건 납득이 안갔기 때문에,
일단 목매달고 보는 겁니다.

제 아는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서 상대방의 지식 수준에 맞춥니다.
어떤 질문을 하던 막힘없이 말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로
대답해줍니다.

실제로 오늘도 그랬습니다.

학부 때도 대~충 했던 컴파일러 이론을 엄청 진지하게 연구해 온 것처럼
행동하고, 제 연구 방향에 엉뚱하게 컴파일러 관련 내용을 집어넣습니다.
꼭 필요한 과목이라고 설명하기 위해서죠.

전 이제 3일 밤낮을 죽어라 공부해도 될까말까 한 일에 도전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게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스스로 위기에 처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만드니까요.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신뢰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할 겁니다. 뭐든 것은 제 노력 여하에 달려있으니까요.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6/03/03 01:19 2006/03/03 01:19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snwslug.fossa.kr/~jachin/rss/response/7

댓글+트랙백 ATOM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response/7

여태까지 제 개인 홈페이지에 대한 욕구는 강했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계정을 얻었지만 홈페이지 사이트를 구축하기에는 제 실력이 너무 미비했습니다. HTML 코드조차 제대로 제어할 줄 몰랐죠. 그 때 당시에는 많은 cgi 게시판이 있었지만, cgi 계정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였었고, 그나마 몇몇 무료 게시판이 있었기에 그것을 사용하여 조금이나마 동적인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처음의 홈페이지는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아무것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HTML 을 습득하고 CSS 까지 익혀가며 자바스크립트를 쓸 줄 알았을 때에도, 홈페이지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했으면서, 손은 제 홈페이지를 만들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홈페이지를 손봐주거나, 원하는 형태로 변경해주는 일을 주로 해버렸습니다.

전 회의가 들었습니다. 제 홈페이지 하나 열지도 못하는 주제에 홈페이지 제작자라고 우쭐대던 제 자신이 마치 껍데기 같았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얘기 하나 만들지 못하고, 제 주변의 것들 조차 바라볼 줄 몰랐던 저는 삶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제가 해온 것들은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것들이었지만, 매력적이지 못했고, 즐겁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즐겨하는 저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 저와 다른 부분을 나누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 제 기술에 대한 것들을 알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제 자신의 기술 외의 다른 것들은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 제 주변에 있는 것들을 관심있게 돌아볼 것입니다. 제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작은 세상, 변하지 않는 일상이지만,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일들이 잔뜩 일어납니다. 매일매일 하루가 똑같다고 느껴지는 일상에도 그날만의 무언가가 존재하듯, 제 자신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하루하루 다르게 느껴지는 절 기억하기 위해 이곳을 열어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6/03/01 03:06 2006/03/01 03:06
TAG ,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6개가 달렸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snwslug.fossa.kr/~jachin/rss/response/2

댓글+트랙백 ATOM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response/2

머릿속에 든 기억을 되새기려 할 때마다,
주로 기억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운 기억이 먼저 떠오릅니다.

항상 즐거운 일은 쉽게 잊기 마련이죠.
즐거운 일일수록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도,
사람의 나쁜 습성 같습니다.

즐거운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즐거웠던 일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블로그를 열어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6/03/01 02:46 2006/03/01 02:46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snwslug.fossa.kr/~jachin/rss/response/1

댓글+트랙백 ATOM :: http://snwslug.fossa.kr/~jachin/atom/respons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