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남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숲. 그 숲은 나무가 복잡하게 자리잡고 자라고 있었고, 나무마다 너비와 지름이 큰데다 높게 자라서 쉽사리 길을 낼 수 없는 숲이다. 숲은 넓게 펼쳐져 있고, 남서쪽으로 지나갈수록 점점 가파른 경사면이 이어진다. 높은 나무가 경사면을 따라 빽빽히 늘어서있고, 그 너머로는 깍아지른 경사면이 이어진다. 나무도 자라지 않는 민둥산이지만, 반대편의 나무 뿌리들이 깊게 흙들을 붙잡아주고 있어서인지, 뾰족한 산은 낮아지거나 허물어지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다랗게 늘어선 산 때문인지 마을로 들어가려면 뱃길이 아니면 들어가기가 무척 힘들다. 단 한군데, 산맥이 끊어지고, 좁은 통로가 하나 있는데, 이 길에 마을 사람들은 성문을 두고, 흙으로 틈을 메운 다음, 남쪽에는 구운 벽돌과 돌들을 쌓아놓았다. 자연과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방벽이었다.
이 문은 마을로 들어가는 관문이나 다름없었다. 문이 있는 곳도 간신히 수레 하나가 지나갈 수 있는 폭이기 때문에 성문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공격하려 하여도, 공격범위가 좁아서 공격할 수 없다. 오히려 많은 군사들을 세워두었다가는 문 위의 궁병에게 죽기 쉽상이었다. 돌이나 기름으로 문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경사가 있는 곳이라 공성병기를 옮기다가 까딱 잘못하면 깔리기 쉽상이었다. 마을의 병사는 200명 남짓한 숫자이지만, 수만의 군사들도 이곳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을 침범하려는 무리가 문이 아닌 곳을 넘어가려고 무수한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산을 넘으면 항상 눈이 쌓여있고, 가파지른 언덕에 나무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시야가 가려서 숲을 빠져 나오려고 헤마다가 얼어죽거나, 엉뚱한 곳으로 가기 마련이었다. 마을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산을 넘기 위해 갑옷이나 제대로 된 무기조차 들고 올 수 없게 된다. 오랫동안 그런 상황이라 마을에서도 성문 앞에 온 군사들에게만 신경썼을 뿐, 만약 소년이 없었다면 성문을 수비하던 사람들은 무척이나 허탈해 했을 것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소년은 굽이굽이 구부러진 숲 속의 길을 통해 숲을 가다 쉬다를 멈춰서 이틀만에 성문을 지키는 사람들의 캠프에 도착했다. 성문은 항상 50~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지키고 있으며, 계절이 변할 때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과 교대로 지키게 되어 있었다. 성문이 공격받고 있을 때에는 200명 내외의 마을 총 인원이 이곳 캠프에 모여서 하루에 2번 교대로 성문을 지키고 있게 된다.
마을에서 봤던 사람들이 소년을 알아보고는 사냥꾼에게 사람을 보냈다. 나이 든 현자를 모시고 온 소년을 사람들은 별로 신기하게 보지 않는 듯한 눈치다. 그들은 소년의 무용담을 듣기 전이라 소년이 성문으로 온 것이 왜 온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나이많은 어르신을 부축하기 위해 왔을것이라 생각하나보다.
사냥꾼은 성문위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분명 그들은 너무나 느긋했다. 성에서 공격하기 위해 나가는 일은 없는 것을 알고 화살이 미치지 않는 먼 곳에 진을 치고는 병사들을 쉬게 하고 있었다. 적극적인 공격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행동임에 틀림없었다. 집단으로 산을 넘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냥꾼의 짐작은 맞아 떨어졌다. 별동대가 마을을 급습했었고, 소년과 꺽다리가 그 공격을 막았다는 어르신의 얘기에 사냥꾼은 안도와 함께 소년에 대한 대견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덧붙여 어르신은 소년의 정체를 사냥꾼에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소년의 신분이 왕족인 것을 안 이상 사냥꾼은 무척 곤란하게 되었다. 그를 돕고 같이 지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사냥꾼은 소년이 그저 자신의 아이와 같은 생각이 들기만 한다. 늠름하고 듬직한 아들. 그가 아직 아들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소년은 무척이나 살뜰하고 뿌듯한 존재였는데... 그가 왕자라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소년은 사냥꾼이 있는 곳으로 왔다.
"아저씨. 저 왔어요."
사냥꾼의 그런 맘이 얼굴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소년은 급하게 사냥꾼을 향해 달려왔다. 무언가 칭찬이라도 바라는 아이의 얼굴처럼 희색이 돌고 있는 소년을 본 사냥꾼은 무심결에
"왕자님, 장하십니다."
라는 엉뚱한 얘기를 해버렸다. 소년도 자기 자신이 '왕자'라고 불리는 것이 어색하다.
"아저씨, 그냥 예전처럼 대해주세요. 전 왕자도 아니고, 그저 떠돌이인걸요."
"그러나..."
"그러게나. 나처럼 늙은이나 왕자님을 왕자님이라 부를법하지. 자네에겐 어울리지 않아."
소년을 왕자라고 부르며 부담을 얹어주기 보다는 친근한 사이로 지내는 것이 소년에게 더 좋으리라 생각한 노인의 농담이었다. 사냥꾼도 멋적게 소년을 보며,
"그.. 그럴까...?"
라며 운을 떼본다. 서로 상기된 두 뺨을 맞대며 소년과 사냥꾼은 예전처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다.
"마을에서 있었던 일은 들어서 알고 있다. 장하구나."
"꺽다리 아저씨가 다 막아주신 덕분인걸요."
"그래도 내 딸을 지킨건 너다. 그 아이가 무사하지 못했다면, 난 이곳에 있을 수 없었을 것 같구나. 네가 한 일이 이 문을 지킨 것과 다름없구나."
"그렇지. 지금까지 사냥꾼이 없었다면 적이 이 산을 넘으려고 얼마나 아웅다웅했을지 모르니까. 그가 이 곳에 없다면 군도 이 문을 공략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거야."
세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이 성의 의미와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이곳을 지키는 방법 등등... 이번 일은 정말 예상외의 일이었기에 노인은 조금 걱정되는 눈치였다.
"이제 이 성에서만 지키는 것은 그만 하세. 아마 적은 점점 더 유효한 방법으로 성문을 지나지 않고 공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어. 이제 곧 이 성문을 뒤로하고 마을에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러나 현재의 병력을 반으로 나누어 마을과 이곳에서 지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네. 왕자님이 이곳에 계시는 이상 더 기다릴 필요는 없네. 이전의 국토를 수복하기 위해서라도 옛 백성들을 모아 다시 군대를 편성해야지. 이번 습격의 결과를 적은 아직 모르고 있을 걸세. 우리보다 먼저 이 문을 넘지는 않을테니까. 빠른 시간안에 적을 습격해야 하네."
"적은 현재 활 거리보다 멀리 진을 치고 있습니다. 경사도 완만한 곳이라 낙석이나 화공도 하기 힘듭니다. 거기에 저희쪽 문은 하나. 적은 항상 이곳 문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
"적의 허를 찌르려면 적과 같이 길이 아닌 곳으로 이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네? 저 경사면을 타고 내려가자고요?"
소년은 어르신의 말에 짐짓 놀랐다. 성벽 주변의 산들은 가파르기도 했지만, 발 디딜곳도 없어 보였다.
"걱정말거라.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오기 위해선 힘든 댓가를 치러야 하지만, 이곳에선 무척 쉽게 넘어갈 수 있단다. 물론 저쪽으로 넘어가면 이 문을 통하지 않고는 다시 되돌아오기 힘들지만 말야."
소년과 사냥꾼의 걱정과는 달리 노인에겐 자신감 있는 모습이 베어있었다.
'생각하기'에 해당되는 글 87건
- 2008/03/06 바부... 나 혼자 쓰는 Fantasy ... 12. 전장 (2)
- 2008/03/04 바부... 마음에 품은 뜻은 겉으로 드러내지 마라. (2)
- 2007/12/23 바부... 내 대신 누군가...
- 2007/12/21 바부...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2)
- 2007/12/01 바부...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2)
- 2007/11/17 바부... 혼자라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벼운 삶의 무게가... (2)
- 2007/11/04 바부... 화나서 쓴 사업취지서...
- 2007/10/28 바부... 나의 자유는 무척이나 위태롭다.
- 2007/10/19 바부... 자유소프트웨어로 돈 벌기
- 2007/10/11 바부... 자유 소프트웨어 정신의 개인적 해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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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품은 뜻을 겉으로 드러내지 마라.'
오로지 품은 뜻을 위해 한걸음씩 다가가라는 얘기일 것이다.
여태까지 잰 걸음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제자리 걸음도 많이 했다.
한 걸음을 떼고는 발 디딜곳을 아직 못 정했나보다.
아니... 금방 내달릴 준비를 하나보다.
조금은 답답하지만, 빠른 뜀뛰기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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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신 누군가 춤춰줄 수 있다면,
나는 춤추지 않으리라...
내 대신 누군가 노래 부를 수 있다면,
나는 노래 부르지 않으리라...
내 대신 누군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남을 돕지 않으리라...
내 대신 누군가 일할 수 있다면,
나는 일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 세상에 할 일이 많아 누군가 일해도 일손이 모자르고,
이 세상에 어려운 사람이 많아 누군가 도와줘도 도움이 모자르고,
이 세상에 노래를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 누군가 노래를 불러줘도 더 듣길 원하고,
이 세상에 같이 춤추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 누군가 같이 춤춰주어도 나와 같이 춤추길 원하니..
내가 할 일이 없어도, 내가 해야만 할 일들이 가득하다.
난 그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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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마신다면야...

아일랜드에서 마시고 반했던 그 맛, 이제는 한국에서?
맥주 한 캔 정도는 마셔줄 수도 있어요. 그것도 무지 비싼 기네스...
(근데 왜 국내 수입된 제품은 소주를 탄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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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잃어버리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돈도 꽤 들어있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카드도 모두 정지해두었고, 현금카드도 모두 정지되어 있으니,
현금 외에는 특별히 돈을 잃을 것에 대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민등록증도 다시 발급받으면 되겠지만, (위조에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제일 아까운 것은, 오랫동안 모아두었던 헌혈증과
2006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던 친한 지인들과의 사진,
그리고 모두가 한 잔씩 마시고 모아줬던 스타벅스 도장을 모아놓은 쿠폰...
나에 대한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깝지 않지만,
다른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의 조각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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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삶을 더하면 점점 더 무거워진다.
혼자로 살 수 있는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록 물에 젖은 옷을 껴입듯
점점 양 어깨는 짓눌리고, 양 발은 무겁다.
가벼운 삶이 무거워 이제는 자유롭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언젠가 다시 이 삶의 무게를 기억하고 되돌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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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립 취 지 서
국내에서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확산되고, 많은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지지자들과 사용자, 개발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은 자유의지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자유소프트웨어를 알리고 배포하는데 중점을 두어왔다. 하지만, 여러 가지 법적 제한으로 인해 행사의 개최나 기업으로부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국내에서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관련하여 지원과 행정적 도움을 주는 곳으로 한국소프트웨어 진흥원이 있었으나, 2007년 초부터 일반인들로 구성된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단체의 지원은 가시적인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따라서 국내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단체들이 법적보호와 지원을 받기 위해, 비영리 사단법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단체와 개인은 자신들의 사비로 단체의 운영과 행사의 진행을 해오거나, 개인적인 친분으로 주변 기업으로부터의 지원을 받아왔으나, 영구적이지 못하고, 일시적인 데다가, 기업에서 이 비용을 세금처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크지 않은 범위 내에서만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한 때문에 국내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은 힘을 얻기가 힘들었으며, 대단위의 행사나 기획을 할 수 없었던 점이 사실이다. 운영자와 참여자들의 노력도 생계유지와 경제적 제한 때문에 영구적일 수 없었으며,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생산, 유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활동은 외국에 비해 무척 빈약하고, 무책임한 활동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이러한 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몇몇 비영리 및 영리 법인들이 등장하였지만, 이들 법인체들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특정 계층(기업, 학생, 교수)의 인사에게만 지원이 될 뿐, 자격을 얻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형태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 이미 많은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고 있으며, 지원에 조건을 두어 그들의 개발 권한과 생산된 산물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이에 국내의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단체가 자유로운 소프트웨어 개발과 그에 따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비영리 사단법인을 결성하고, 실질적이고 형평성 있는 운영을 통해 많은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사용자와 개발자들을 지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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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무너질지 모르는 천칭의 균형만큼 잠시동안의 미묘한 균형.
순간 멈춰있는 저울의 중심처럼 난 이 순간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천칭은 기울기 시작했다.
이제는 균형을 마추기 위해 시소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느라 애쓰는 아이들처럼
하루종일을 애쓰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나의 짧은 자유는 이제 위태롭다.
무너질 것 같은 균형속에서 이 자유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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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유 소프트웨어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자기 자신의 노력만 가미한다면, 누구에게나 쉽고 즐겁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다.
자유소프트웨어는 그 자체로 돈을 벌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거기에 더불어 자신의 노력이 가미되어야만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전 글에 대한 지적으로, '오픈소스는 경제적인 수단이 있어야만 한다.'고 답변을 하셨던 Hybrid님의 말씀처럼, 경제적 수입이 없다면 자유소프트웨어 제작자와 지원자들은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러나 자유소프트웨어는 배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직장을 창출해내는 장치이다. 그러므로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또 다른 자유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개선해나가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사상과 정신을 이해시키려 한다.
자유소프트웨어는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원해서 만들고, 원하면 개선한다. 자신이 만들 힘이 없으면 그것을 개선할 사람을 고용해서 개선하도록 한다. 개발한 사람의 의지와 사용자의 편의가 맞아떨어진다면,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선을 일부러 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가져다 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자유소프트웨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배포본 개발 업체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쓰기 쉽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노력없이 쓸 수 있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천가지 소스 패키지들을 하나로 취합해 원하는 목적에 쓸 수 있도록 만드려면 천가지 소스 패키지들을 일일이 다 확인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업체가 전 세계에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로 어려운 일임엔 틀림없다. (만약 쉽다면 컴퓨터 가게만큼 많아야 정상이지 않을까?)
국내 리눅스 업체들이 망한 이유는 '팔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한 때의 노력으로 편리하게 만들면, 앞으로 손보지 않고도 계속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팔 필요가 없다. 자유소프트웨어는 정말로 팔 수 없는 소프트웨어이다. 팔아서 이윤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많은 노력을 담은 제품이라는 뜻이다. 그 노력이 매일 이른 새벽,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줍는 환경 미화원의 노력만큼 고되고, 힘들었다면,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편리하고 쾌적하게 느낄 것이다. 자유 소프트웨어는 정말로 '육체노동'과 맞먹는 고통의 '지식 노동'을 요구한다.
그러한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이 글을 읽으면서 긍정하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유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당신들 뿐이다.
그러나 자유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배포하는 과정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유소프트웨어는 '협업'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이다. 많은 개발자들이 프로그램의 버그를 전달하고, 개선하고, 재배포 하는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그 기반에 네트워크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노력을 비동기적으로 아무 때에나 한 곳에 모으기 쉽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이미 개발된 많은 소스들을 네트워크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많은 개발자들이 개발하기 원하는 기능을 새로운 정신적 고통을 치르지 않고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프로젝트를 포크하여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변모시킬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의 재배포에 대한 라이센스를 준수하기만 한다면, 자신만의 버전을 배포할 수도 있다. 기존의 자유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들은 버전 관리를 통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포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소프트웨어 공학에 적합한 형태로 개발되고 발전되어 온 자유소프트웨어의 힘이다. 전자 네트워크를 통한 자유소프트웨어의 배포는 무척이나 용이해졌지만, 이것은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개발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여러분의 주의를 둘러보라. 누구 하나 리눅스를 쓰는 사람이 없다면, 당신은 배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원할 때 쓸 수 없다. 이 전제가 모든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일자리를 주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주변에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간단하게는 자신의 중요한 원고를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남기길 원하는 소설가에서부터, 대형 유통회사에 대항해 조합을 형성하여 간신히 영업을 하고 있는 서점, 슈퍼마켓, 외식업체 사장님들, 동네에 철물점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열심히 검색엔진을 통해 검색하는 사람들, 아이들이 공부 외에 다른 용도로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어하는 부모님들 등등... 이 사람들은 정보를 갈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이러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며, 여러분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소프트웨어를 그들이 원하는 형태로 바꿔주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일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업체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네이버, 다음, 구글, 야후... 그들이 모든 정보를 돈을 주고 구입하여 사람들에게 아주 싼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못하는 것은 너무 많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접객할 수 없으며,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원하는 수요를 충족하고 있지 못하다. 난 이러한 일을 하는데 지역 개발자 단체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같이 직접 호흡하면서 사람들이 직접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배포하는 개발자. 내가 꿈꾸는 최상의 모델이며,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다.
현재의 자유소프트웨어는 어느 정도 성숙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두명씩 개발자가 자라나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자유소프트웨어를 제작하고, 아무런 댓가없이 배포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도움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제공할 수 있는 댓가만큼을 지불하도록 종용하라. 세상에 공짜는 없지 않은가? 일단 그렇게 만든 것을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라. 누군가 그 소스를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젠가 또 다른 개발자가 그 소스를 이용해서 별다른 노력없이 금방 소프트웨어를 제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 개발자를 먹여살린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느라 고생하고 있을 많은 개발자들을 먹여 살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댓가만으로 제작된 듯 한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댓가 총합과 같다. 그럼 만든 사람만 고생이지 않았겠는가? 괜찮다. 그 사람들도 자신들의 소스 외의 다른 부분을 쉽게 얻어서 쓰지 않았는가. 그 정도의 노력이야 기존 개발한 사람들의 노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개발자들의 문제는 자신이 만든 소스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필요로 의해 만들었고, 그 필요가 다른 회사에도 있을 터이니, 나중에 그 노력을 돈으로 치환받기 위해서라도 공개되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개하지 않아야 다른 개발자가 그것을 만들어주기 위해 돈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악의적인 생각으로 그러한다면 자기 자신만이 그것을 만들 수 있고, 자신만이 그것을 위해 일 해야만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의식이 남아있는 것이 우리나라 개발자 풍토이다. 그래서 더욱 더 이 사회에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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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음악, 회화작품처럼 컴퓨터 프로그램(Program)도 소프트웨어이다. 정신적 작용을 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누군가 썼던 표현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고, 음악을 잘 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들었던 음악을 표현할 수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렸던 그림을 다시 그릴 수도 있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남의 글이라고, 내가 읽고 다시 쓸 수 없고, 남의 노래라고 내가 흥얼거릴 수 없고, 남의 그림이라고 내가 따라 그릴 수 없다면... 그것으로 인해 나의 정신적 작용을 통해 표현하는 자유를 억압받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특허를 냈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는 소스를 쓸 수 없다면, 특허에 없는 소스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체계적이고, 성능에 적절한 구조를 따라 작성되기 때문에, 특정 기능에 대해 누군가 먼저 생각해내고, 고안해 내었다면, 후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같은 구조의 소스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이 만들 수 있고, 자신의 능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어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음원의 복제가 크나큰 문제가 되었다. 본래 노래를 불렀던 사람의 음성, 소리를 그대로 재현해내면서, 처음 한 번 노래를 부르면, 그 이후로는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자기 노래의 희소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수는 세상에서 제일 궁핍한 사람이 된 듯 하다. 그들 중, 궁핍한 사람이 많다 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모두 궁핍하지는 않다. 왜 그럴까?
컴퓨터 프로그램의 불법복제가 심하다고 한다. 정말로 국내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국내에서 열심히 소프트웨어를 제작해도 망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가 없을까? 아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판매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앞의 두 예는 국내에 "저작권 보호법"의 확대 시행이 이뤄지면서 보호받게 된 사례이다. 컴퓨터는 정품을 쓰도록 제한하고, 음반은 아무데서나 틀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래서 이젠 돈벌이가 아주 잘 되었는가? 아니다. 오히려 더 고단하다. 대규모로 투자받고, 대규모로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 그들은 법의 보호를 받아서 살아남은게 아니다. 그들의 존재를 스스로 알려서 살아남았을 뿐이다.
음악의 질은 세계최고 수준이 아니다. 그래도 국내에선 세계의 명반보단 많이 팔린다. 프로그램의 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다. 그래도 국내에선 세계 최고의 프로그램보단 많이 팔린다. 이유는 하나. 지역적,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친밀함이다.
누구나 다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할 수 있고, 그들이 모두다 명곡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명곡을 흉내내고, 명곡의 기교를 배워 스스로의 음악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을 모두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평생 그들을 위해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듣는 사람들은 음악의 풍요속에 살 것이다.
누구나 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제작 할 수 있고, 그들이 모두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프로그램을 흉내내고, 최고의 응용프로그램들의 알고리즘과 기술들을 배워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의 프로그램을 모두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그들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평생 그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프로그램의 풍요 속에서 살 것이다.
난 이러한 풍요를 위해서 사회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왔다. 그것은 바로 '노동의 가치'이다. 일의 책임에 따라, 경중에 따라, 위험도에 따라, 희소성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것이 노동의 댓가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상대적 잣대를 재어 모든 사람들의 노동 가치를 평가하면, 불합리한 것들이 많아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쓰레기 줍기'를 아무나 할 수 있다고 해서 청소부의 노동가치를 싸게 정한다면, 이 세상은 쓰레기로 덮힐지도 모른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그들의 노동을 '필수적인 활동'으로 인식하여 그 가치를 판단한다. 또한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적용되므로, 노동 가치의 단위화가 가능하다.
고도화, 정보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컴퓨터의 사용은 필수적이고, 컴퓨터 프로그램의 수요는 항상 있다. 또한 지역적 특성외에는 거의 모든 곳이 비슷한 형태의 사회 구조를 갖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약간의 특수성을 띄면서도 거의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다. 프로그램을 특허내어 한 사람 혹은 기업의 힘으로 모든 지역,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란 어렵다. 국내의 음반이 지역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국내에서 더 잘 팔리는 것처럼, 프로그래머가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주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끼린 경쟁보단 협업과 기술 공유로 서로의 기술을 발전하고, 더 나은 생산력을 얻는 것이 어떠할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 서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보다는 보편적 성향에 기대면서, 그러한 보편적 성향이 특정인의 주장과 생각으로 형성되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안타깝다. 서로의 의사를 교환하는 방법이나 횟수도 무척 적다. 사회적 공감대란 누구 하나의 의견도 빼놓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협상하며 결정되어야 이뤄질 수 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한 목소리를 지녀야 비로소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진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이 운동이야말로 '사회적 공감대'가 없으면 결코 이뤄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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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글을 못 읽었지만,
내 딸을 지킨, 이라는 구절에서
왕자가 어쩌면 사냥꾼의 사위가 되고픈건 아닐까 짐작해 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전개될 내용을 보신다면 무척 놀라실걸요?